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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니스 크라울리 #1 : 닷컴 버블의 붕괴, 내 친구들은 무얼하고 있을까?
    IT's Fun/SNS Revolution 2011. 10. 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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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동안 7회에 걸쳐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포스퀘어" 를 만든 데니스 크라울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한 바닥에서 진득하게 자신의 생각을 녹여내 온 데니스 크라울리의 흥미진진한 세상으로 빠져보시지 않으렵니까?


    2000년 3월 10일, 우리나라의 기술주 중심의 주식시장인 코스닥 (Kosdaq) 의 모델인 미국 기술주 시장 나스닥 (Nasdaq) 의 주가는 5,048.62 포인트를 기록하여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금은 어디서 무슨 서비스를 운영하는지 알기조차 힘든 아메리칸 온라인 (AOL) 의 기업가치는 2000년 1월 타임워너가 인수한 직후 182조원에 달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던 IMF 구제금융 사태의 여파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닷컴 기업들에 의해서 새로운 경제를 창출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이 날, 미국의 다우존스 (Dow Jones) 지수는 9,928.92 포인트를 기록하며 1만 포인트를 살짝 하회하며 장을 마감했다. 나스닥 지수는 1년여만에 100%에 가까운 상승을 보이며 전세계의 벤처 캐피털들이 실리콘밸리에 퍼붓고 있는 돈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from https://flatworldbusiness.wordpress.com/flat-education/previously/web-1-0-vs-web-2-0-vs-web-3-0-a-bird-eye-on-the-definition/dotcom-bubble/


     
    이튿날인 2000년 3월 11일 나스닥 주가는 하락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하락이 2002년 10월 9일까지 근 2년 6개월여동안 78% 가 폭락하는 아픔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급격한 상승에 대한 조정이 온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변화는 대응을 하기 힘들정도로 빨랐다. 5000포인트를 넘던 나스닥 주가지수는 1000포인트 초반까지 떨어졌다. 장미빛 일색이었던 닷컴 기업들이 실질적인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힘든 구조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실리콘밸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자금을 빌려올 곳이 없어진 회사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화려한 미래를 꿈꾸며 일하던 많은 개발자, 기획자들 역시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버려졌다. 어제까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서로의 안위를 챙겨주기 이전에 스스로 먹고 살길을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IT 종사자들에게 천국이었던 그곳은 하루 아침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당시 주피터 리서치 (Jupiter Research) 라는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던 데니스 크라울리 (Dennis Crowly) 는 닷컴 버블의 붕괴와 함께 친구들이 직장을 잃고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지는 아픈 경험을 해야만 했다. 어제까지 같은 사무실, 옆 회사의 사무실에서 인터넷 붐의 주역이 되었던 실리콘밸리 키즈들이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었다. 데니스 크라울리는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건강은 괜찮은 것인지 알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친구들의 소식을 빠르게 공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크라울리는 닷지볼 (Dodgeball) 이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후에 그가 만든 포스퀘어 서비스의 전신이기도 한 닷지볼은 이처럼 정말 단순한 컨셉에서 출발했다. 그저 친구들에게 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공유하고 소식을 전하는 것이 서비스의 목적이었다. 

    해고된 내 친구들이 하루종일 어디를 돌아다니면서 노는지 알고 싶었던 거죠 - 데니스 크라울리

    개인 프로젝트로 조그맣게 시작했던 닷지볼은 크라울리가 뉴욕대의 2년짜리 ITP (Interactive Telecommunication Program)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제대로 된 서비스로 거듭나게 되었다. 뉴욕대의 ITP 과정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사용에 관한 짧은 과정으로 새로운 통신기술, 의사소통의 수단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크라울리는 자신이 만든 서비스의 가치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금 더 깊게 생각 했을 것이다. 위치 기반의 서비스에 대한 의미나 정의가 제대로 잡히기도 전에 이미 닷지볼이라는 서비스를 통해서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을 만든 크라울리의 행보는 오늘날의 포스퀘어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많은 의구심을 풀어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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