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조카의 백일을 맞이하여 수원을 찾았습니다. 수원이 고속도로 접근이 편한 곳에 사는 분들에게는 가까운 곳이지만 NoPD 처럼 서울의 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먼 곳입니다. 그렇다보니 수원에 갈일이 한번씩 생기면 수원에서 볼꺼리리, 먹을꺼리리, 할꺼리를 하나라도 하고 오려고 애(?)를 쓰는 편입니다.

조카의 백일을 맞이하여 양가 가족이 함께 모인 곳은 수원 행궁 바로 앞에 있는 행궁별관. 오늘 포스팅의 소재가 행궁별관은 아니지만 간단히 한줄평을 하자면 쏘쏘~! 실내 공간도 꽤 넉넉하고 독립된 큰 방들이 여럿 있어서 가족 모임을 하기는 참 좋지만 음식의 맛이나 질에 대비하여 가격이 조금 비싸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여튼 가족 식사를 마치고 늦으막히 잠시 들른 곳은 수원 행궁 바로 앞에 있는 "수원 화성박물관". 

출처 : 한국관광공사 (http://korean.visitkorea.or.kr)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일단 박물관 전경 사진은 한국관광공사 협찬으로...;;; 수원 화성박물관은 여느 박물관처럼 오전 9시~오후6시까지 운영하며 입장 시간은 오후 5시 까지입니다. 체험 프로그램을 별도로 이용하지 않으면 어린이들은 무료입장에고 어른들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됩니다. 이른 시간에 관람을 하면 수원 화성, 화성 행궁, 수원 박물관, 수원 화성박물관 4종 이용권을 구매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수원의 곳곳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오후 5시가 다되어 박물관에 도착한터라 서둘러 엄마, 아빠의 입장권을 끊고 전시관에 입장했습니다. 1층 입구 바로 앞에 있는 화성 행궁 축소모형을 보고 있는데 멀리서 표를 끊어준 직원이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셋이면 부모 입장료 면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환불을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조건은 다둥이카드나 의료보험증, 주민등록등본 등 세 아이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제시입니다. 입장료를 환불받고 나니 괜히 박물관이 더 좋아보이더라는 ㅎㅎㅎ...

수원 화성박물관은 규모면에서 그리 크지 않습니다. 서울 강서의 허준 박물관처럼 제한된 내용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는 곳이라 조금 아쉽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1층은 화성 행궁을 중심으로 축소된 모형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수원과 조선시대의 수원을 비교해 볼 수 있어서 아이들이 무척 흥미로워했네요. 사진의 오른쪽이 행궁이고 가운데 지나가는 개천 바로 왼쪽의 초가집이 모여있는 곳이 수원 화성박물관 쪽입니다.
 

 
전시관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따로 사진을 찍지는 않았습니다. 전시의 주된 내용은 조선시대 22대 왕인 정조가 왕에 등극하고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예를 되찾고 수원 화성을 축조하며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어떻게 왕권을 강화하고 권위를 회복해 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입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굶어 죽은 것은 조선의 당파싸움과 왕위를 둘러싼 파벌싸움 등 조선의 어두운 면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사시간에 제대로 역사를 익히지 못한 탓에 ㅎㅎ 정조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것도 수원 화성박물관을 들러서 겨우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정조(正祖, 1752년 10월 28일 (음력 9월 22일) ~ 1800년 8월 18일 (음력 6월 28일))는 조선의 제22대 임금이다. 휘는 이산(李祘), 본관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10세에 요절한 백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통을 계승했다. 1775년부터 1776년까지 할아버지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였다. 1776년부터 180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1776년부터 1780년까지 홍국영(洪國榮)이 실권을 잡았고 홍국영을 축출한 해인 1780년부터 1800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을 하였다. (출처 : 위키피디아 "조선 정조",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A0%95%EC%A1%B0)

 

 
 2층 전시관을 모두 둘러보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와 수원 화성의 사진전을 보고 아이들 체험시설쪽으로 가보았습니다. 시간이 늦어서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해 볼 수는 없었지만 조선의 왕과 왕비의 복장으로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곳은 다행히 이용해 볼 수 있었습니다. 워낙 우리나라 역사를 좋아하는 큰 딸래미는 신이나서 왕비 복식을 하고는 사진을 찍으며 놀았네요. 아빠도 왕의 복장으로 사진을 같이 찍고 나서야 둘째는 쑥쓰러워하며 입어보겠다고 하네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화성 행궁 구경은 못할 것 같아서 들렀던 수원 화성박물관. 규모가 크지 않기에 더 부담없이 둘러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특히 다자녀 가구, 다둥이 부모라면 아이들 데리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는 곳이라 더욱 매력적인 곳이죠! 꽃샘추위가 지나면 수원 화성박물관에서 야외 체험 프로그램도 이용해보는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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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피디
 
세계사를 싫어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독 역사 -특히 세계사- 과목은 나와 거리가 먼 과목이었다. 역사책에는 정말 많은 내용들이 담겨있지만 그 주를 이루는 것은 전쟁, 그리고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정치가 대부분이다. 정치를 워낙에 싫어하고 사건의 인과관계, 전후 관계를 묻는 수많은 시험 문제들에 치인터라 역사라는 과목은 유독 내 성적표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하던 과목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라는 책은 이런 편견을 가진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역사를 기초로 한 픽션 소설이든 역사서든 태어나서 단 한권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NoPD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 만으로도 참 대단한 일이겠지만, 53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는 것은 더 대단한 사실일 것이다.

저자가 쓴 글이나 책을 이전에 읽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메리 스튜어트를 읽으면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이전에 "스코틀랜드의 여왕" 이라는 이름으로 출판 되었던 책을 다시 메리 스튜어트라는 이름의 책으로 다시 엮었다는 것도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참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것이, 역사라는 어쩌면 무겁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마치 한편의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것처럼 풀어냈다는 점이다.

여왕으로 태어난 인간 메리 스튜어트

태어나면서 부터 "여왕" 이라는 삶을 살게된 -불우한-한 스코틀랜드 여인의 이야기는 아는 것이 여왕으로서 사는 것뿐인 인간 메리 스튜어트의 어둡고 짧은 인생의 기록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때에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여왕으로 살아가던 인간의 슬픈 잔혹사랄까? 어쩌면 처음부터 잉글랜드의 여왕이 되건 되지 않건은 그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흐름 때문에. 수많은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인 혼탁한 정치판 한 가운데에 "여왕"이라는 지조 하나를 지켜온 한 여인은 그저 아는 삶이 여왕으로서의 삶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란적도 바라지도 않았던 것은 아닐까?

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간에도 여왕으로서의 권위와 풍모를 잃지 않았던 모습은 그녀가 어떻게 그녀의 위치를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녀를 피했던 엘리자베스는 정치적 역사적으로는 더 성공했다고 화자될지 몰라도 어쩌면 여왕으로서의 삶은 그다지 "여왕스럽지 못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두 여인의 죽음, 더 여왕다운 죽음은?

단두대의 시퍼런 칼날 아래 세상을 등진 메리스튜어트. 쓸쓸하게 권좌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죽어간 엘리자베스. 두 여인중 누가 더 행복한 여왕의 삶을 산 것이고, 조금이나마 더 아름답게 인생을 살다 간 것일까? 판단은 책을 읽고 각자 머릿속으로 내려보는게 어떨까.

- No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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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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