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Fun2015.07.27 09:05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 중 개인적으로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는 서비스는 트위터(Twitter)입니다. 정보의 유통속도에 엄청난 가속을 해왔고 기존 언론이 관심을 갖지 못했던 지구촌 생태계의 정말 많은 곳에 변화를 이끌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과의 이런 차별점은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데 어느정도 제약 조건으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로 인해 더 큰 규모의 사용자를 끌어들이거나 열성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로 자리잡지는 못했습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던 트위터를 기업 공개를 통해 상장시켰던 딕 코스톨로(Dick Costolo)는 얼마전 CEO 자리에서 내려왔고 현재는 창업 3인방중 한명이자 스퀘어(Square)의 창업자인 잭 도시(Jack Dorsey)가 임시로 CEO 자리를 맡고 있는 중입니다. 공식적으로 트위터의 CEO 는 공석인 상태이고 적절한 인물이 나타나면 잭 도시는 다시 2선으로 물러날 예정이기도 합니다. 분명 중요한 서비스이고 매력적인 서비스이지만 정체에 빠져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고 있는 트위터는 어떤 사람이 맡아 이끌어 나가면 좋을까요?



트위터...! (출처 : 트위터 공식 홈페이지)



테크크런치(Tech Crunch)의 벤 파(Ben Parr)는 기사를 통해 트위터의 차기 CEO는 세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트위터가 현재 상장회사라는 점에서부터 향후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 어떤 자질을 갖춘 사람이 이끌어 나가는 것이 좋을가에 대한 한가지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기 CEO 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차기 트위터 CEO 가 갖추어야 할 자질 세가지 ]

1. 월 스트리트(Wall Street)와 협상할 수 있는 대가여야 한다. (Must be a master at dealing with wall street)

2. 트위터의 제품을 정비하고 매출을 일으켜야 한다. (Must be able to clean up twitter's product and revenue dysfunction)

3. 트위터를 이끌고 있는 인재들을 붙잡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Must be a magnet for top-tier talent and stop the twitter brain drain)


트위터는 상장사로서 서비스 자체를 만들고 이끄는 임직원들, 이를 이용하고 있는 수억명의 사용자들, 그리고 회사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투자가들과 주주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세가지 자질이라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결국 회사가 더 많은 매출을 만들고 수익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사업을 정비하고 이를 위해 능력있는 사람들이 더이상 이탈하지 않도록 CEO 가 회사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하나의 명제를 위한 조건들이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트위터가 속해 있는 미디어, 소셜 네트워크의 영역은 쉬운 영역은 아닙니다. 보다 개인적이고 몰입도가 높은 페이스북이나 다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는 달리 "돈"과 연관지어 운영을 하기 힘든 측면도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숙제를 해야만 하는 절체 절명의 상황이 작금의 트위터입니다. 트위터가 어떤 CEO 를 만나 새롭게 사업을 정비해 나갈지 한번 지켜봐야하게습니다.


[ Tech Crunch 원문 자세히 읽어보기 ]

#1. http://techcrunch.com/2015/07/25/the-three-qualities-twitters-next-ceo-must-have/?ncid=rss&utm_source=feedburner&utm_medium=feed&utm_campaign=Feed%3A+Techcrunch+%28TechCrunch%29

#2. http://techcrunch.com/2015/07/09/doesthismeantwitterboardisknights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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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피디
IT's Fun/SNS Revolution2011.07.22 22:16

인터넷에서 블로거들이 MP3 파일과 같은 오디오의 형태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블로깅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블로그가 제공하는 RSS 피드를 통해서 직접 녹음한 오디오 파일을 배포하고 구독자를 만들어 가는 일부 열혈 블로그만의 소통 형태였다. 이러한 방식이 팟캐스트 (Podcast) 라는 이름을 갖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이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애플 (Apple) 의 아이팟 (iPod) 이 휴대용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아이튠즈를 통해 블로거들이 제공하는 오디오 파일을 자신의 아이팟 단말에 동기화 해서 듣기 시작했다. 아이팟 (iPod) 과 방송 (Broadcast) 의 합성어인 팟캐스트 (Podcast) 라는 용어는 이렇게 만들어져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from Naruter blog (http://naruter.blogspot.com)


위기에 빠졌던 블로거 닷컴을 트렐릭스의 투자 유치를 통해 성공적으로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에반 윌리엄스는 블로거 닷컴을 구글 (Google) 에 피인수 시키며 구글러로서의 삶을 잠시 영유했었다. 하지만 1년정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구글을 박차고 나와 팟캐스트 서비스 전문회사인 오디오 (Odeo) 를 2004년 창업하게 된다. 블로거 닷컴의 구글 인수와 윌리엄스의 입사, 그리고 퇴사는 나중에 다른 포스팅에서 더 다루도록 하겠다. 여튼, 윌리엄스가 새롭게 시작한 서비스 오디오는 당시 빠른 속도로 매니아층을 넓혀가고 있던 팟캐스트 서비스들을 한 곳에서 모아 디렉토리 서비스, 검색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었다. 

오디오를 통해서 검색된 팟캐스트는 사용자들의 아이튠즈,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 등을 통해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팟과 같은 휴대용 기기로의 동기화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도 팟캐스트를 구독하고 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팟캐스터들은 자신의 팟캐스트를 블로그의 RSS로 공급하는 수동적인 방식 이외에 오디오 서비스에 직접 등록해서 호스팅을 할 수 있는 이른다 팟캐스트 호스팅 기능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구독자가 많지 않은 경우에는 무료로 호스팅을 해주었지만 인기있는 팟캐스트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용량 대역폭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당시 트렌드에 잘 맞는 서비스였고 초기 펀딩도 받을 정도로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을 충분히 어필한 서비스였다.
 

from http://www.ruggedelegantliving.com/a/003679.html


하지만 오디오의 운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오디오 서비스를 완전한 기능으로 오픈하기 직전 그동안 공식적으로 팟캐스트 서비스에 대한 지원이 없었던 애플이 아이튠즈 4.9 버전을 발표하면서 전격적으로 팟캐스트 검색, 구독기능을 추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속담에 있는 말처럼 애플이 " 다된밥에 재뿌린 " 겪이 된 것이었다.
 
우리는 일년동안 오디오 서비스에 매달려 왔습니다. 우리가 천재인줄 알았지요. 하지만 아주 안좋은 신호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팟캐스트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었지요 - 비즈 스톤, Twitter 공동 창업자

오디오 서비스가 찰스 리버 벤쳐 (Charles River Ventures), 론 콘웨이 (Ron Conway)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것은 2005년 8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튠즈 4.9 버전이 발표된 것은 이보다 빠른 2005년 6월 말이었다. 한참동안 투자자를 찾고 설득하고 서비스를 준비해오던 오디오에게 팟캐스트 기능이 추가된 아이튠즈의 발표는 치명타였다.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시기가 좋지 못했던 까닭에 오디오 서비스는 아이팟을 갖고 있지 않던 사람들을 중심으로만 사용되는 서비스가 되고 말았다. 아이튠즈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미처 전체 기능을 준비하지 못한채 서비스를 오픈한 것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블로거 닷컴 초기에 겪었던 수익모델 부재를 상쇄할 준비까지 마쳤지만 제대로 시장에서 힘을 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계속) 

- No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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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피디
IT's Fun/SNS Revolution2011.07.21 09:44

안녕하세요? NoPD 군입니다. 한동안 너무 바빠서 블로그 업데이트가 아주아주 뜸했지요 ㅎㅎ. 날씨도 더워지고 더 루즈해지면 안되겠다 싶어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원래 다른 목적으로 쓰고 있던 글인데 이래저래 바쁜 회사 업무 덕분에 일이 잘 안풀려서 ㅎㅎ 블로그 연재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아무쪼록 재미있게 읽고 대한민국의 SNS, IT 를 위해 큰 일꾼이 되실 수 있는 자극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미국의 젊은 창업자들은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던 빌 게이츠가 그랬고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도 그랬듯이, 에반 윌리엄스 역시 대학생활을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년 반동안 네브라스카 대학 (University of Nebraska) 을 다닌 에반 윌리엄스는 학업을 그만두고 여러 조그만 스타트 업 (Start-up) 회사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윌리엄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잠시동안 집안의 농장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IT 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던 그는 1996년, 컴퓨터 관련 기술서적으로 유명한 오라일리 미디어(O’RIELLY MEDIA)에서 마케터 자리를 제안받아 다시 기술 업계 근처로 갈 기회를 잡게 되었다. 한동안 농장에 있던 그에게 마케터로 일하는 것은 새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마케터 일보다 글을 쓰는 것에 흥미가 있던 윌리엄스는 회사의 재가를 받아 마케터 겸 테크니컬 라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단순히 글을 쓰는 것 뿐만 아니라  개발자로서 유수의 IT 업체들과 함께 일을 하기도 했는데, 인텔과 휴렛패커드 같은 회사들이 그의 파트너 회사들이었다.  
 

Evan Williams (http://images.businessweek.com/ss/08/09/0929_most_influential/25.htm)


 그렇게 3년여의 시간을 보낸 후 윌리엄스는 Pyra Labs 라고 이름 지어진 그의 첫 회사를 만들었다. Pyra Labs 는 Pyra 라는 제품명을 가진 웹 기반의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였다. 1999년 창업 이후 한참 개발이 진행되던 Pyra 는 중도에 시스템의 목표를 변경하게 되었는데, 이 때 탄생한 것이 바로 블로거 닷컴 (Blogger.com) 이었다. 개발중이던 소프트웨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너무나 엉뚱한 이유에서였다. 당시 Pyra Labs 에서 일했던 웹 개발자 폴 바우시 (Paul Baush) 는 그가 운영하던 개인 웹사이트를 블로그로 바꾸었는데, 정말 별 것 아닐 수 있었던 이 변화를 윌리엄스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윌리엄스는 Pyra 에도 블로그와 같은 형태로 웹에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부가적인 기능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yra 에서 이 부가적인 기능이 갖는 의미는 일종의 내부 정보 공유 채널이었다. 이 컨셉이 점차 발전하여 모체인 Pyra 보다 더 큰 의미있는 발전을 하기 시작했고, 별도의 프로젝트로 분리하여 런칭한 웹 서비스가 바로 블로거 닷컴이었던 것이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블로거 닷컴은 프로젝트 관리자나 중간 관리자들이 할 일을 관리하는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던 Pyra의 하부 컴포넌트 중 하나였던 것이다. 
 

Blogger.com


 블로거 닷컴은 서비스형 블로그 서비스로서 당시 한참 붐이 일기 시작하던 블로그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1999년은 블로그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지 얼마 안되던 시기로 시장의 강자를 논하기도 힘든 시기였고 대부분의 블로깅 도구들이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운 좋게도 블로거 닷컴은 기업을 위한 시스템의 일부로 개발이 되었던 덕분인지 글의 작성, 발행, 관리와 같은 근래의 블로그 서비스 혹은 도구가 제공하는 많은 기능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1999년 8월 결국 Pyra 프로젝트가 아닌 블로거 닷컴이 공식 런칭되었다. 본래의 프로젝트가 아닌 서브 프로젝트가 발전하여 서비스화 된 사례로 이후 에반 윌리엄스가 역사에 남긴 많은 사례들의 길을 걸어간 첫 번째 프로젝트로 기록되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블로거 닷컴은 서비스 런칭 이후 그리 순탄한 길을 걸어가지는 못했다.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광고를 싣고 있었고, 이 광고를 없애는 1년 단위의 비용은 고작 12달러에 불과했다. 회사 자금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고 급기야 공동 창업자였던 멕 휴리안마저 회사를 그만두고 떠났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에반 윌리엄스은 혼자 블로거 닷컴을 운영해야만 했다. 당연히 재정은 넉넉치 못했고 서비스의 운영 자체가 버거운 날들이 계속 되었다. 이런 어려움을 겪던 블로거 닷컴이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2001년 4월 벤처캐피털 트렐릭스 (Trellix)가 투자를 감행하면서 부터였다. 트렐릭스의 창업자인 댄 브리클린 (Dan Bricklen)은 투자를 결정하면서 블로거 닷컴이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사업 모델에 변화를 요구했다. 광고가 가능한 블로그 서비스인 블로그 스팟 (BlogSpot)과 프리미엄 서비스인 블로거 프로 (Blogger Pro)가 블로거 닷컴의 새로운 수익모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미래를 내다본 벤처캐피털의 과감한 투자가 자칫 역사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블로거 닷컴을 구제했던 것이었다. 

2011:07:20 12:37:20

에반 윌리엄스와 댄 브리클린의 만남 (http://www.bricklin.com/log/blogger.htm)



그렇다면 블로거 닷컴의 미래를 보고 과감한 투자를 했던 트렐릭스의 댄 브리클린은 누구일까? 댄 브리클린이 8비트 애플 컴퓨터의 킬러 어플리케이션이었던 비지캘크(VisiCalc)의 개발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소프트웨어 아츠 (Software Arts) 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비지캘크를 개발, 판매하던 댄 브리클린은 1985년에 과도한 차입금으로 인해 회사 운영이 매우 어려웠던 시절을 겪었었고 후에 스프레드시트 시장을 석권했던 로터스 (Lotus)의 미치 (Mitch) 의 투자를 이끌어 내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댄은 오래전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그 도움을 다시 전해준 것이었다.
 
우연히 데이브 와이너의 블로그를 보다가 윌리엄스의 회사 Pyra 가 처한 문제점을 알게 되었지요. 윌리엄스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And Then There Was One’ 이란 포스팅은 날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어요. 소프트웨어 아츠를 처음 설립하고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그 무언가 였지요 – 댄 브리클린, Trellix Fo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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