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모두가 아는 것 처럼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강'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아무리 NoPD군이 다시는 오기 싫은 나라가 인도라고 설레발 치더라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문명이 태어난 곳 중 한 곳이다. 그런만큼 인도 전역에는 무수한 역사 유적지들이 가득하고 유적지들은 그들마다 아픈 과거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들이 많다.
인도의 델리 (정확히는 올드 델리)에 위치한 레드 포트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는 1600년대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사자 한이 10여년에 걸쳐 지은 왕궁이라고 하니 4백여년을 우뚝 버티고 서 있는 인도 역대 최고의 왕조 '무굴 제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라고 하겠다. 반면, 영국의 식민지 시절 (물론 우리의 일제 식민치하와는 조금 다르지만) 인도주둔 영국군 총사령부가 위치했던 어쩌면 가슴아픈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역사를 알고 오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많은 사람들이 휴일에 이 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사실, 별다른 놀이 문화 라던가 유흥이 발달하지 못한 인도에서 주말에 고궁, 유적지를 찾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입장료에 대하여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자국민에게는 초저렴, 외국인에게는 초고가) 습성이 있는 나라가 인도라, 저렴한 비용으로 주말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늘 사람으로 붐빈다고 한다.
자국민에게는 10루피의 입장료를 받지만 외국인은 200루피의 입장료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전용 매표 창구는 한산하기 그지 없고 인도인 전용 매표 창구는 줄이 한없이 길게 늘어져 있다. 그 틈을 노리고 유창한 영어로 안내를 자청하는 꼬마들이 밉지만은 않다. 입장 티켓을 사고 입구를 들어서니 우리를 맞이하는 건 멋진 유적이 아닌 상점들. 이 통로를 지나야지만 진짜 레드포트 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관광지에 있는 상점들이 그러하듯 그리 싸지 않은 가격과 왠지 등쳐먹을 것 같은 주인들의 얼굴은 잠깐 생겼던 일말의 구매 욕구 조차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냈다.
상점을 지나고 나면 또다시 줄이다. 이 수많은 인도 사람들 속에서 줄을 서고 들어가면 정말 대단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는 우리들 정도는 따로 입장을 시켜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많은 곳에서 외국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모습을 봤기에 욕심을 내봤지만 유난히 까다롭게 구는 델리 경찰(Delhi Police)은 만만치가 않았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인도에서는 타지마할을 보면 모든 유적지를 가본 셈 쳐도 된다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만큼 타지마할은 인도를 대표하는 유적지이고, 인도 고대 문명 혹은 문물의 표준(Standard)을 자처하고 있는 곳이라는 말이었다. 이 곳 역시 예외는 아니라, 아직 가보지 못한 타지마할의 대리석을 깎아 벽에 박아넣은 양식 (뭐라 불러야 할지...)을 따르고 있었다. 사진속의 벽 무늬들은 그림이라던가 깎은 것이 아니라, 구멍을 내고 그 안에 다른 대리석을 넣어 만든 것들이다. 놀랍지 않은가?
온통 붉은 벽돌로 둘러쌓여 있어서 레드 포트(Red Port)인 것일까? 페인트를 가득 발라놓은 것도 아닌데 붉은 빛을 띄는 벽돌로 모든 성벽이 만들어져 있는 모습은 이채로운 광경이다. 펄럭이고 있는 인도 국기 대신 오래전 어느날인가에는 영국 국기가 흩날리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문득 우리나라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지금은 해체된 구 중앙박물관이 떠올랐다.
인도의 유적지를 돌아다니면서 볼 수 있는 많은 광경중 하나는 가족 혹은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 곳을 방문하는 모습이다. 놀이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과 저렴한 자국민 입장료가 같이 만들어낸 독특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러한 유산, 문물들은 가두고 보호하기 보다 인도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 녹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정책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길게 줄을 서서 들어왔던 입구는 박물관(미술관?)이었는데, 저 멀리 건물 왼쪽 끝에 위치한 입장 통로로 사람들이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더운 날씨에 거기까지 줄을 서서 들어가는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 공원 산책하듯 레드 포트를 한바퀴 돌고 나왔다.
부럽지 않은 나라라 생각하면서도 왠지 이런 곳들을 볼 때 마다 부러운 것은, 그들이 이런 유산을 대하는 편안한 모습과 겪없는 태도들이었다. 너무 감싸고 보호하면 느끼기가 힘들다. 적당히 풀어주고 나두면 사람들은 적절한 행동을 알고 취한다. 오히려 여유로운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그런 모습보다 훨씬 좋아보이고 부러웠던건, 아마도 이런 광경들을 보고 오래 고민해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릴 결론이 아닐까 싶다.
- No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