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비행기 여행의 여파인듯 밤새 칭얼거리던 N양은 아침이 되서도 기분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습니다. 아기들은 작은 변화에도 컨디션이 크게 영향을 받는가 봅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N양 할아버지가 관리하고 계신 감귤 밭을 잠시 구경한 후, 제주도 투어에 들어갔습니다.
제주도에는 워낙에 유명한 관광지들이 많아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들이 많다고 합니다. 곽지해수욕장은 어느정도 알려져 있는 해수욕장중 하나인데, 제주도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1132번 도로를 타고 길을 가다가 만날 수 있는 해수욕장입니다. N양 할아버지가 애월읍에 계시기 때문에 차를 타고 그리 오래 달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이라 해수욕장은 이미 폐장한지 오래였지만 사람이 없는 해수욕장이 주는 느낌은 색달랐습니다. 와이프를 만나고 나서 부산의 경포대 겨울바다를 봤던게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경포대의 바닷물 빛깔이 조금 탁했고 겨울임에도 사람이 많았다면, 이곳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주도는 워낙에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서울 하늘처럼 종일 찌뿌둥한 날씨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흐린 날씨라면 모를까 -하물며 이런 날씨도 하루에 십수번이 바뀌는 곳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이면 사람들이 가득할 천막들은 손님이 없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는군요.
백사장으로 걸어가는 길 왼편으로 "과물노천탕"이라는 돌담이 보입니다. 바닷물을 받아서 노천탕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한 무리의 아주머니 관광객들이 깔깔거리며 남탕을 엿보는 모습이 괜히 정겹습니다 -_-. 설마 뜨거운 물이 나오는 노천탕은 아니겠지요?
바람이 워낙에 세차게 불다 보니 모래가 날려가지 않도록 모래사장을 전부 망으로 뒤덮어 놓은 모습이 이색적입니다. 원래 모래가 있는 곳인가? 하는 궁금증도 생기는군요. 바닷물 쪽으로 조금만 나가도 화산탄처럼 보이는 구멍 숭숭 뚫린 돌(현무암 이던가요?)이 가득합니다.
늘 거기에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해녀상 둘이 외롭게 해수욕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해녀상. 바닷물과 하나되어 살아온 힘든 일상이 표정에 묻어나는 듯 합니다. 뒤로 보이는 에메랄드 빛 바닷물은 우리에게 눈요깃 거리지만, 해녀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겠지요?
강한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들이 펼치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에메랄드 빛 바닷물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자연의 아름다움 이랄까요. 바람이 차가웠지만 답답했던 가슴 한켠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다시금 이 사진을 보는 지금도 그 답답함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다시 저곳에 돌아갈 때 즈음엔, 이런 답답함이 없어지길 바래봅니다.
- NoPD -